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(문단 편집) === 이후 === 도스토옙스키는 이 사건 이후로 사람이 바뀌어 4년간 최악의 환경을 견디면서 머릿속에 글을 썼다고 하며, 군에 들어가게 된 후 출판하는 것을 허가받게 된다. 근데 사실 [[시베리아]]에서도 그 성격을 못 죽이고 따돌림당했다. 위에 언급된 책에서는 "동료들은 내가 너무 잘난 집안 출신이라서 날 왕따시킴"이라고 [[정신승리]]했지만. 이후의 그는 죽는 날까지 마치 페이지 하나하나, 작품 하나하나가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처럼 [[죄와 벌]], [[백치]], [[악령(소설)|악령]], [[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]] 등 불후의 명작을 연달아서 내게 된다. 그 전에는 글자 하나마다, 한장마다 시간을 들이며 하루 종일 망상을 하던 그였지만 이후로 쉬지 않고 글을 썼으며 쓰고 있지 않을 때는 쓸 내용을 중얼거리고 다녔다고 한다. 그런 탓인지 그의 작품들은 거의 극도로 세밀하고, 집념이 느껴지는 묘사가 눈에 많이 띈다. 실제 이 경험은 도스토옙스키의 저작 [[백치]]에도 주인공 미쉬킨이 말하는 삽화로서 등장한다. 시간을 낭비하던 한 남자가, 사형대 앞에 서고 나서야 1분 1초가 아깝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이야기.[*스포일러 하지만 묘하게도, 그 남자는 살아나게 되자 결심했던 대로 살지 못하고 다시 시간을 낭비하면서 보냈다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다. 도스토옙스키도 마누라 잘 만나기 전까지 도박을 못 끊었으니 자전적인 인물이라 할 수도.] 사형 사건 이후 그의 글은 어둡고 현실적으로 바뀌게 되지만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로부터는 탈피하지 못했다. 오죽이면 문학계에서 도스토옙스키 안티로 유명한 [[블라디미르 나보코프]]가 '도스토옙스키를 용서할 수 없다.'고 그랬을까. 또한 이 시기부터 그는 [[서유럽]]의 [[자유주의]] 사상을 멀리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지게 되었으며, 강경 [[국수주의]]로 기울어지게 되었다. 그의 전기 저자에 따르면, 황태후나 [[차르]]에 대한 탄원서와 [[징징]]거리는 편지를 수도 없이 썼다고 한다. 또한 누군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불쌍하게 여기면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. 그만큼이나 그 경험에 고마워했다. 자유주의에 관해서 고생을 좀 한 만큼 멀리하게 됐을 가능성이 있다. 한편 시베리아 유배 생활이 끝나고 1857년에 유부녀였던 [[https://ru.wikipedia.org/wiki/%D0%94%D0%BE%D1%81%D1%82%D0%BE%D0%B5%D0%B2%D1%81%D0%BA%D0%B0%D1%8F,_%D0%9C%D0%B0%D1%80%D0%B8%D1%8F_%D0%94%D0%BC%D0%B8%D1%82%D1%80%D0%B8%D0%B5%D0%B2%D0%BD%D0%B0|마리아 드미트리예브나 이사예바(Мария Дмитриевна Исаева)]]와 결혼한다. 유부녀와 바람이 난 것은 아니고, 이사예바의 남편이 죽자 원래부터 이사예바를 사랑했던 도스토옙스키가 적극적으로 청혼한 것. 그러나 결혼 이후에는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도스토옙스키가 하필 이 시기에 간질 발작을 일으킨데다 생활고가 심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.[* 도스토옙스키와 이사예바의 자세한 이야기는 고려대 노문과 석영중 교수의 기사에 실려있다. 기사 링크-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3&oid=353&aid=0000030370|뭐, 애 딸린 미망인과 결혼하겠다고?]]]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1864년에 사망한다. 소설 [[죄와 벌]]의 등장 인물인 카쩨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는 바로 이 이사예바를 모델로 완성된 캐릭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